뤄창에서 다시 시닝으로

새로 포장한 315번 국도를 타고 도착한 타클라마칸사막 동남부의 뤄창(若羌)은 인구 3만명의 작은 현(縣)이다.

하지만 서역남로의 다른 도시들처럼 뤄창도 개발의 바람이 거세다.

국도에서 뤄창으로 접어드는 진입로는 새로 포장해서 아직 차선도 긋지 않은 상태.도로공사를 하면서 옛 이슬람사원은 앞부분의 돔과 첨탑만 남은 채 허물어졌다. 시내 중앙 대로의 한쪽 끝에 있는 현 청사 인근에는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퇴락한 옛집들과 대조를 이룬다.

이곳 사람들 말로는 뤄창현을 러우란(樓蘭)현으로 개칭하고 뤄창과 민펑 사이에 신(新)러우란시를 건설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옛 러우란왕국의 영화가 1500년의 세월을 넘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뤄창에서 서북쪽으로 220km쯤 떨어진 러우란 고성(古城)은 기원 전부터 5~6세기까지 번성했던 러우란 왕국이 있던 자리다.

오아시스인 로프노르(羅布泊·뤄부포)를 끼고 있어 대상들이 물과 식량 등을 보충할 수 있는 실크로드의 요충지이자 서역 남·북로의 분기점이었던 것.5~6세기 무렵까지도 번성했던 러우란 왕국은 그러나 왕국 동쪽의 오아시스인 로프노르의 물길이 바뀌면서 물이 고갈돼 주민들이 떠나고 옛 왕국은 모래에 묻히게 됐다고 한다.

'방황하는 악마의 호수'로 알려진 로프노르가 1600년가량을 주기로 옮겨다니는 이동성 호수라는 것.1964년 이후로는 호수가 완전히 말라버린 상태라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러우란 고성은커녕 뤄창 인근의 미란(米蘭)고성도 볼 수 없다.

중국 당국이 주요 핵 시설과 실험장이 있는 군사지역이라며 차량을 동반한 탐험대의 답사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아쉬움을 접고 다시 동쪽으로 향한다.

백양나무 가로수길을 통과해 차가 뤄창을 벗어나면 곧장 모래와 자갈,잡초들이 뒤섞인 황무지 사막이다.

길도 비포장으로 바뀌었으나 계속 포장공사를 할 듯 신작로를 넓게 내고 있는 중이다.

길에서 눈을 들어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길고 커다란 산맥이 가로막는다.

타림분지를 동남쪽에서 받치고 있는 아얼진(阿爾金)산맥이다.

몽골어로 '측백나무가 있는 산'이라는 뜻인 아얼진산맥은 신장웨이우얼자치구의 타림분지와 칭하이성의 차이다무(柴達木)분지 사이에서 동북 방향으로 뻗은 산맥.서쪽으로는 쿤룬산(崑崙山),동쪽으로는 당진산(當金山) 및 치롄산(祁連山)까지 맞물린 전장 700km,폭 200km가량의 거대한 산줄기로 최고봉인 아얼진산은 해발 5798m다.

한동안 사막만 봐온 탓일까.

나무 한 그루,풀 한 포기 없이 맨 몸을 그대로 드러낸 기기묘묘한 형상의 산들에서 태초의 신비마저 느껴진다.

그 산자락에서 낙타에 짐을 실은 유목민 두 사람이 말을 탄 채 양떼를 몰아가고 있다.

이제 차는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그 산맥의 협곡으로 들어선다.

산줄기의 계곡 속을 헤집고 가는 길 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무너질듯 버티고 있고,바위덩이를 피해가며 간신히 빠져나가는 앞차들이 위태위태하다.

대협곡을 3개나 지나 암반을 깨서 길을 낸 산허리로 접어드니 이번에는 실타래를 던져놓은 듯 꼬불꼬불 올라가는 길이 이어진다.

해발 3877m의 아얼진산고개에 올라 첩첩의 산너머를 보니 멀리 보이는 설산이 눈앞의 민둥산들과 어우러져 웅장한 모습을 연출한다.

올라올 때만큼이나 꼬불꼬불한 길을 내려가자 드디어 칭하이성이다.

해발고도는 단번에 3000m가량 치솟았다.

여기서부터 비포장길 255km,포장도로 314km를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칭하이성의 서쪽 끝에 있는 유전도시 화투거우(花土溝).유전개발을 위해 조성된 도시여서 크지 않은 곳인 데도 삭막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길가에는 '청해유전을 지속하기 위해 협조하고 분투하자'는 등의 구호가 요란하게 걸려있고,숙소조차 청해석유관리국이 운영하는 석유초대소다.

화투거우 인근에 유사산(油沙山)이라는 지명이 있는 걸 보면 예부터 기름이 나왔던 모양이다.

다음날 새벽,영하 16도의 추위 속에 별을 보며 화투거우를 출발하자 시추탑의 불빛과 유전에서 내뿜는 불꽃들이 어둠을 밝히고 있다.

점차 고도는 높아지고 해발 2735m의 고원도로를 달릴 즈음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대지를 발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내민다.

하루 종일 780km를 동쪽으로 달린 끝에 거얼무(格爾木)에 도착하니 칭하이성과 티베트의 라싸를 연결하는 칭짱궁루(靑藏公路)의 시발점이 거얼무 시내 옌차오루(鹽橋路)와 차이다무루(柴達木路)의 교차로 가운데에 기념탑으로 표시돼 있다.

다시 거얼무에서 시닝(西寧)으로 가는 길.거얼무에서 사막과 산길을 번갈아가며 525km를 달린 끝에 해발 3800m의 상피산(橡皮山)고개에 이르자 거대한 칭하이후(靑海湖)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해호변에 다가서자 짙푸른 물빛과 육안으로는 가늠하기 어려운 넓이가 가히 '바다'임을 보여준다.

호변의 넓은 초원에는 풀을 뜯는 양떼와 야크떼가 한가로운데 호변도로인 109번 도로를 따라 한 남자가 오체투지로 라싸를 향해 간다.

감숙성에서 두 달이나 왔다는 짜시(30)라는 젊은이다.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하며 간다"면서 "라싸까지는 3년쯤 걸릴 것"이라고 했다.

추위와 배고픔,장기간의 순례에 따른 고통 같은 것은 전혀 읽을 수 없는 표정이다.

짜시에게 격려금을 보시한 뒤 다시 얼마간 가자 옛날 당 태종의 양녀였던 문성공주가 티베트 왕 송첸캄포에게 시집가다 너무나 슬프게 울어서 강물이 거꾸로 흘렀다는 다오창허다.

다오창허에서 1km쯤 떨어진 일월산 고개에서 문성공주를 기리는 일정(日亭)과 월정(月亭)을 보고 나니 이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간다.

이곳에서 66km를 더 달리자 처음 출발했던 시닝.

모든 것은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