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다무 평원을 3시간 쯤 달리면 멀리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난산산맥이 보인다.
저 산맥을 넘어야 오늘의 목적지인 마둬(瑪多, 해발 5500m)에 도착할 수 있다.
초원제일진(草原第一鎭).
초원의 첫째마을이라는 입간판이 서있지만 동부 티벳으로 가는 방향에서는 사실 마지막마을인 '하커'에 잠시 들른다. 난산산맥을 넘기전에 요기도하고 차량정비도 미리 해두어야 한다.
마을 한가운데로 큰 길이 나있어 수시로 대형트럭 등이 왕래한다.
동부티벳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마을은 마을대로 여기저기 집을 짓고 도로공사를 하느라 시끌벅적하다.
우리 탐험대와 동행하는 중국여유국 감독관 차량과 말.
아직도 이곳에서는 말도 대중교통 수단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마실 나온듯한 원주민이 전봇대에
묶어 두고 볼 일 보러갔다.
한편으로는 말이나 소를 팔아 오토바이를 타고 폼을 잡는 티벳탄도 종종 볼 수 있다.
길은 말없이 문명을 실어나르고, 사람은 시나브로 변해 가는 것이다.
말을 타고 양떼나 소떼를 관리해야 하는 이들이 초원에 있기 보다 문명이 소통하는
길과 마을의 출입이 부쩍 잦아진 것이다.
문명의 이기가 신기한 것은 비단 어른뿐만이 아니다.
콧물이 고속도로처럼 왔다 갔다하는 아이들이 언제부터 우리 탐험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할 일 없이 배회하던 떠꺼머리 총각과 라마승 그리고 또 다른...
그들과 어울려 본다. 처음엔 쭈빗뿌빗하던 사람들이 이내 움찔하는 특유의 미소로 다가온다.
아이들에겐 사탕을 나눠주고 총각과 라마승에게는 사진을 찍어 보여주고.
세상에! 생전 자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을 것 같은 그들에게 디카는 대단히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임에 틀림없으리라. 사진을 찍으면 혼을 빼았긴다는 미신을 아직 믿는 그들에게도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여 이내 우리 탐험대와 웃고 떠드는 지경에 이른다.
구멍가게다. 우리나라 60년대 쯤 될까.
조악하기는 하지만 비교적 다양한 품목들이 비치되어 있다.
19세기 같은 이 오지에서도 축구공과 농구공이 필요한 것인가?
중국은 서부대개발을 통해 티벳사람에게도 골고루 혜택이 가게 하겠다고 하지만
아직은 요원해 보인다. 가뭄에 콩나듯 하는 조그마한 마을에도 중국인들이 대부분 상권을
장악하고, 특별히 다른 직업도 가질 수 없는 현실에서 티벳탄들은 여전히 식민지배를
받는 피지배자로서의 처참한 현실에 봉착해 있는듯 하다.
서부대개발의 혜택이라고 한다면,
어차피해야 하는 도로와 전기와 오토바이 정도. 그것을 혜택이라고 하기에는 겸연쩍지 않은가?
마을의 어린이들은 유목생활을 접고 정착했지만 마땅히 뛰어 놀 장소도 없고
놀이도 없다. 오히려 초원을 잃고 말을 잃고 자연을 잃은 것이 아닐지.
하커마을의 아이들은 집 앞마당의 진창길이 놀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