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들의 땅' 위수
중국 신화에 나오는 쿤룬산 꼭대기에는 천제(天帝)의 궁궐이 있다.
그 궁궐 누각의 동서남북에 옥을 열매로 맺는 주수(珠樹) 쉬안수(璇樹) 등의 나무들이 무성히 자란다.
위수(玉樹)도 그런 나무 중의 하나다.
칭하이성 남부,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에서 가까운 위수(玉樹)는 바로 이런 신화에서 유래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는 도시다.
양쯔강(揚子江) 상류의 퉁톈강(通天江) 유역에 있는 위수가 역사의 무대에서 주목받은 것은 당나라 태종의 양녀인 문성(文成)공주가 티베트의 송첸캄포(松贊干布)왕에게 시집을 오면서부터다.
송첸캄포는 티베트에 최초의 강력한 통일왕조를 세우고 세력을 확장했던 인물.
문성공주는 당나라 도읍인 장안(현재의 西安)을 출발해 시닝(西寧),마둬,위수 등을 거쳐 라싸로 향했고 송첸캄포는 공주를 영접하기 위해 대규모 영친 행렬을 이끌고 칭하이(靑海)까지 달려갔다고 한다.
이때 문성공주는 위수에서 1년간 머무르며 사람들에게 가지고 간 곡물 종자와 채소 씨앗을 심고 경작하는 법,방직과 자수기술 등을 가르쳐 주었다.
유목에만 의존하던 위수 사람들에게 문성공주는 새 삶을 열어준 셈이다.
공주가 라싸로 떠나자 위수 사람들은 그녀의 족적을 더듬으며 감읍했고,훗날 그녀가 사망하자 가묘를 세워 기렸다고 한다.
위수 사람들이 세운 '문성공주 묘'로 향한다.
이른 아침 위수 시내 주유소에 들른 탐험대 차량에 검은색 긴 치마를 입은 장족 여인이 다가와 알록달록한 종이뭉치를 내민다.
하양,초록,노랑,분홍 등의 손바닥만한 색종이에 관음보살상과 불경을 인쇄한 것으로 차량의 안전 운행과 행복을 기원하기 위해 길에다 뿌리는 것이라고 한다.
100장이 넘어 보이는 한 묶음에 중국돈 2위안(약 280원)이다.
차에 기름을 넣고 창장(長江) 상류를 왼편에 끼고 12km쯤 올라가자 댐이 나오고 그 너머로 멀리 설산이 보인다.
다시 3km쯤 더 올라가니 '文成公主墓(문성공주묘)'라는 안내판이 보이고 잠시 후 오른편에 울긋불긋한 깃발이 나부끼는 널직한 들판이 있다.
길 왼편 산 위로는 하얀색 깃발을 따라 산 언덕을 올라가는 사람들이 기다란 행렬을 이루고,오른편 들판에는 푸르디 푸른 티베트의 하늘 아래 하얀색 천막들과 소풍이라도 나온 듯한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앉아 쉬고 있다.
도대체 뭐하는 곳일까.
다시 길을 따라 3km쯤 올라가자 왼편 야산 언덕에 독수리 500여 마리가 떼지어 앉아 있다.
이들 중 일부는 도끼를 든 사람이 잘라주는 고기를 받아먹느라 머리를 한껏 도끼 앞에 들이민다.
도끼를 든 사람이 '훠이,훠이' 소리치며 쫓아내도 다시 모여들고 금세 먹이 다툼을 벌인다.
도끼를 든 사람은 독수리가 먹기 좋게 '고기'를 잘게 자르고 부숴 던져준다.
그때마다 독수리들은 날개를 퍼덕거리며 먹이를 낚아채느라 부산하다.
이 독수리들이 이렇듯 다툼을 벌이며 먹는 것은 바로 죽은 사람의 '몸'이다.
끔찍하다.
아무리 이곳의 전통적인 장례 방식이라지만 사자(死者)의 육신을 저렇게 참혹하게 다룰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의 몸을 부수고 쪼개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될 줄이야….'문화 상대주의'라는 말로도 얼른 스스로를 추스르기 어렵다.
이것은 장족의 오랜 장례문화인 천장(天葬)이다.
조장(鳥葬)이라고도 하는 천장은 사자의 시신을 산에 뿌려 신성한 새인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함으로써 바로 승천하거나 부귀한 집안에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장례의식.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른 장례법이다.
전통적으로 티베트에서는 병들어 죽은 사람이나 어린이가 죽었을 때는 수장(水葬),하층민은 토장(土葬·매장),일반인은 천장,라마승이나 귀족은 화장을 한다고 한다.
티베트인들이 민물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지금은 티베트에서도 보기가 쉽지 않다는 천장 의식을 촬영하기 위해 사진기를 꺼내들자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다가와 "사진을 찍으려면 소의 폐와 간을 사서 독수리에게 주라"고 한다.
이 야산에서 어떻게 소의 간과 폐를 살 것인가.
돈으로 대신하면 안 될까 물어보자 "알아서 내라"고 한다.
결국 부의금을 내고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하늘은 저렇게도 맑고 푸른데 땅에서는 한 사람의 시신이 독수리들의 입을 통해 하늘로 올라간다.
사람의 두개골이 잘게 쪼개져 독수리들의 먹이로 사라지는 데에는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
참으로 덧없는 것이 삶이다.
살아 있을 때 이 한 몸 소중한 것이지 죽고 나면 한낱 고깃덩이에 불과한 것을….
차는 다시 산 정상을 향해 달린다.
정겹게 펼쳐진 냇물과 야크와 양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산 언덕 사이로 난 길은 오를수록 험해진다.
포장도로는 일찌감치 끊겼고 비포장길은 해발 4244m를 넘어서면서 울퉁불퉁,구불구불해서 잠시도 방심할 틈이 없다.
얼마나 달렸을까.
산 중턱에서 좀 아래로 내려갔을 즈음 길 왼편의 거대한 바위에 티베트 문자로 뭔가를 새긴 석벽(石壁)이 나타난다.
티베트 불교의 육자 진언(주문)인 '옴마니반메훔'을 주로 새긴 석각(石刻)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옴마니베베훔'이라고 하는 이 진언은 문자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외우는 것 자체로 공덕을 쌓고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주문.절에서는 물론 길을 걸을 때에도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를 돌리면서 '옴마니반메훔'을 끊임없이 외운다.
안내인의 말로는 700여년 전부터 이런 석각이 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위 벽에 새긴 석각만 있는 게 아니다.
길섶에는 크고 작은 돌에 진언이나 불경을 새긴 마니스(瑪尼石)가 무더기로 쌓인 마니두이(瑪尼堆)가 줄지어 있고 길 옆 개울물 속의 바위에도,석각의 맞은 편 산꼭대기 바위에도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계곡 안 3km가량에 걸쳐 이런 석각과 마니두이가 있다고 하니 티베트인들의 신심이 새삼 놀랍다.
석각과 마니두이를 따라 계곡 끝까지 내려가자 레이바거우(勒巴溝)라는 마을에 석각에 대한 설명을 담은 비석과 탑이 서 있다.
비석에는 "진사장(金沙江)이 시작되는 이곳 협곡 입구 남쪽에 예불도(禮佛圖)와 삼세불 음각도,대일여래를 주불로 금강수보살과 관세음보살을 함께 새긴 삼존불상,구존(九尊)불상 등이 밀집해 있다"고 쓰여 있다.
진사장은 창장 상류의 퉁톈허(通天河)가 쓰촨성(四川省)으로 접어들면서 불리는 이름.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레이바거우 석각'과 이 협곡의 불교 마애상들은 티베트 불교의 건축 특색을 여실히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 서화동 기자 소개
한국경제신문에 근무중인 기자로서 2005년 중국서부극지대탐험에 참가한 경력이 있다.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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