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탄서 뤄창까지

 다시 사막으로 나선다.

옥의 고장 호탄에서 사막공로의 종점 민펑으로 돌아가는 길.타클라마칸 사막의 남단을 따라 동쪽으로 가는 이 길은 옛날 비단길의 서역남로다.

실크로드 중에서 간쑤성(甘肅省)의 둔황(敦煌)에서 양관(陽關)-뤄창(若羌)-체모(且末)-민펑(民豊)-호탄을 거쳐 예청(葉城),카스(喀什·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서역남로는 일찍이 한나라 때부터 이용됐던 문명의 교통로였다.

그러나 당대(唐代)에 접어들면 둔황에서 옥문관(玉門關)을 거쳐 쿠얼러,쿠처,카슈가르로 가는 서역북로를 주로 이용했고,남로의 번성했던 오아시스 도시와 왕국들은 쇠퇴한다.

그렇게 잊혀졌던 서역남로가 되살아나고 있다.

'죽음의 땅'에서 나는 석유 때문이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남북으로 관통한 사막공로로 싣고 나온 석유를 동부로 이송하는 새로운 통로로 남로가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카슈가르에서 뤄창에 이르는 남로의 대부분이 포장도로라니 신장에 대한 중국의 기대와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

잘 닦인 길 덕분에 한달음에 달려온 민펑.숙소에서 멀지 않은 재래시장에 들러보니 우리의 명절 대목장같다.

마침 10월3일부터 한 달간의 금식월을 끝내고 가족과 친지,친구들이 모여 잔치를 벌이는 라마잔헤이트(축제) 전날이기 때문이다.

시장에는 먹을거리,입을거리가 넘쳐난다.

잣,호두,건포도,과자 등을 파는 가게에는 알록달록한 과자들이 금식을 마친 웨이우얼 무슬림들을 유혹한다.

건포도는 검은 것만 있는 줄 알았는 데 초록색도 있다.

신장의 풍부한 일조량 덕분에 달기로 유명한 청포도를 말린 것이다.

수타면처럼 밀가루 반죽을 면발로 길게 뽑아서 튀긴 축제용 음식도 불티나게 팔린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터에서 바로 잡아서 파는 소와 양이다.

장터까지 멀쩡하게 걸어왔을 소가 가죽과 머리,네 발만 남은 채 장바닥에 누워있고,양고기를 파는 가게에는 양털과 머리가 수북이 쌓였다.

숱한 생명들이 인간을 위해 희생됐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지만 그것이 이 사람들의 사는 방식이요 문화인걸 어쩔 것인가.

장터 뒷골목에는 축제를 앞두고 구두를 수선하거나 닦으러 나온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고,미장원과 이발소도 머리를 다듬으러 온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민펑에서 다시 동쪽으로 달려가는 길은 포장한 지 보름가량 밖에 되지 않은 새 길이다.

중앙선을 칠하기 위해 그었던 밑줄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길 양옆에는 도로를 모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밀집 같은 것을 잘라 땅에 박아놓은 '가짜 밀밭'과 울타리가 수십m씩 조성돼 있다.

타클라마칸의 명물인 호양나무 숲도 군데군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호양나무와 도로 보호용 밀밭을 위해 세워놓은 '嚴禁烟火'(엄금연화·불을 피우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을 보니 느낌이 묘하다.

새로 닦은 길이라 그런지 다니는 차는 거의 없다.

민펑을 떠난 지 100km 만에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갔을 뿐이다.

드디어 체모에 도착했다.

민펑에서 체모까지 거리는 299km.예전에는 하루 반이 걸렸던 모래 길이 포장도로 덕분에 3시간으로 줄었다.

쿤룬(崑崙)산맥에서 가장 높은 무즈타거펑(木孜塔格峰·7723m)을 남쪽에 두고 있는 체모는 옛 체르첸의 왕국이 있던 곳으로 아파트와 현대식 빌딩들이 들어서 옛날의 흙집 같은 전통가옥들은 거의 사라졌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중국전신(電信)의 전송국장 세이디씨(47)는 "체모 주변의 도로가 포장된 데다 주3회 운항하는 공항도 생겨 체모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체모에서 새로 뜨는 부유층으로는 식당주인과 택시기사,트럭 운전사라고 한다.

쿤룬산맥에서 가까운 만큼 체모 또한 호탄 못지 않게 옥으로 유명하다.

숙소인 무즈타커빈관 로비에는 '호탄옥왕'(玉王)이라는 무게 1502㎏의 옥덩어리를 전시하고 있는데,1995년 발견한 이 옥을 체모로 운반하기 위해 산길을 21km나 새로 내고 73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체모 시내에는 옥공예품을 파는 가게들이 골목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이 골목에서 화흥옥기(華興玉器)라는 가게를 갖고 있는 양정화씨(楊靖華·54)는 "동쪽의 아얼진(阿爾金)산에서 쿤룬산맥까지 800km 구간에서 옥이 난다"면서 "체모의 옥 가공 공장에서 연간 채취하는 옥만 150t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 일대에서 발견된 최대의 옥덩어리는 60t에 이른다니 쿤룬산은 그야말로 캐도 캐도 끝이 없는 옥의 산인 모양이다.

체모의 서쪽에는 체모고성(古城)이 있는 데 고성의 입구에는 고분군이 있다.

고성은 아직 발굴은커녕 지표조사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여서 일반에는 개방되지 않는 곳이지만 한국에서 온 탐험대라고 소개하자 특별히 관람을 허락했다.

이 지역을 관리하는 토호라커장원의 학예연구사는 체모고성의 넓이가 1800㎢에 이르며 출토 유물을 고성 입구의 고분군과 비교한 결과 춘추시대까지 역사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고성의 바닥은 진흙으로 덮여있는 데 한때 융성했던 고성이 대홍수 때문에 망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고도 했다.

성의 바닥에는 예전의 도기 조각들이 널려 있고,일본의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결과 도자기 외에도 맷돌,유리 등도 출토됐다고 한다.

고성 입구의 고분군 옆에는 300여 기에 달하는 전체 고분들 가운데 160여기의 고분을 발굴해서 출토된 미라와 유골,유물 등을 소개하는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안에는 2600여년 전에 살았던 남녀노소 14명의 유골과 부장품으로 묻었던 도자기,나무,동기와 철기,비단,모피옷 등을 지하묘 자리에 출토 당시의 모습대로 전시하고 있다.

미라 상태로 발굴된 2명 가운데 90호묘에 묻힌 남자는 전국시대의 사람으로 모자를 쓴 채 채찍을 손에 쥔 모습이고,9호묘에서 나온 여자의 미라는 모피를 깔고 버선과 모자까지 썼는데 붉은 색과 청색이 2000년 이상의 세월을 넘어 선명하다.

체모를 떠나 뤄창으로 가는 길은 새 도로가 나면서 370km에서 275km로 단축됐다고 한다.

민펑에서 체모,뤄창으로 이르는 길이 예전에는 비포장이어서 가난을 면치 못하던 곳으로 길이 나면서 도시들이 들썩들썩한다고 이곳 사람들은 설명한다.

뤄창은 북쪽의 쿠얼러로 가는 길이 1999년 개통된 데 이어 체모,호탄,카스로 통하는 길이 포장됐고,칭하이성(靑海省)의 거얼무(格爾木)로 연결하는 도로도 건설할 계획이라니 서역남로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